시론> 미국의 이중잣대
시론> 미국의 이중잣대
  • 선경식대표
  • 승인 2005.08.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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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참으로 묘한 나라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나라별로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다. 강한 나라에는 약하게, 약한 나라에는 강하게 나간다. 또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것도 특징이다. 미국에는 잣대가 여러 개 있어 어떤 잣대를 들이밀지 종잡을 수 없다.
 
핵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7월 18일 인도와의 정상회담에서 평화적 핵이용을 위한 협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고 두 차례나 핵실험을 감행한 나라인데도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비위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형국이다. 인도는 이미 50-9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를 생각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도엔 원만하게, 이란엔 강경하게, 자국엔 무관하게

반대로 이란과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간의 핵 동결 협상에서 미국은 경제제재 등 강경책을 주문하고 있다. 핵시설에 대한 군사작전까지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이 이란의 안전보장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마찰음 속에서 이란은 7월 31일 핵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유럽연합 3개국이 핵개발 포기 대가를 담은 제안서 제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유럽연합은 “이란이 핵활동을 재개한다면 협상은 끝날 것이며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NPT체제는 핵국과 비핵국의 불평등을 전제로 출범했음에도 미국의 국익 우선 정책에 따라 비핵국들의 불신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미국은 △ 199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의 조기 발효에 반대하고 있고 △ 2001년에는 탄도요격미사일 제한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했으며 △ 2002년에는 비핵국에 대한 선제 핵공격 등 핵전략을 담은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를 채택하는 등 핵감축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핵확산금지조약의 세 기둥(비확산, 핵군축, 평화적 이용)의 하나인 핵군축(핵감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상태다.  
  
미국이 북한에 들이댄 잣대는 인도에 내민 잣대와는 다른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자극하면서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북한으로서는 체제위협에 시달린 나머지 체제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베이징 제4차 6자회담이 곧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3일 현재 공동합의문 문안 조율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4차 6자회담은 과거 세 차례(2003년 8월, 2004년 2월, 2004년 6월) 열린 6자회담에 견주어 여러 면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회담의 전망을 밝게 하는 긍정적 신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 3-4일로 못 박았던 회담 기간을 이번에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실질적 성과를 중시한 까닭이다. 참가국들의 각오와 결의가 느껴진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호칭도 달라졌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는 김위원장을 ‘체어맨’으로 불렀다. 체어맨은 북한의 영문 홍보자료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부시 대통령이 ‘미스터 김정일’로 호칭한 데 이은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북미간 양자 회담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1-3차 회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6자회담의 틀거리 속의 북미 양자회담이 돌파구가 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에 대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비접촉원칙의 사실상 폐기”라고 평가했다.

북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동시에 이행돼야

이런 전향적인 방식이 왜 진작부터 활용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법으로 대등한 조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악수의 기원을 보더라도 미국과 북한은 서로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문제는 공동합의문의 내용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지붕 아래 핵 폐기와 북미관계정상화라는 기둥이 동시에 세워져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계속 북한의 핵폐기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행 순서를 놓고 선후를 따지면 협상은 물 건너가게 된다. 동시진행과 병행추진이 유일한 해법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은 NPT에서도 인정하는 주권국가의 권리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를 제한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든 나라에 똑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글쓴이 / 선경식

· 한국정경연구소 대표
· 정치평론가 
· 고려대 언론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
· 중앙일보 사회2부 차장, 월간중앙 부장
· 노동일보 편집국장 등 역임
 
2005. 8. 4  / 선경식 

*위의 글은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99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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