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선제공격 계획 정말 없나
대북 선제공격 계획 정말 없나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10.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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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영길 의원을 위한 변명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이 군사기밀 2급에 해당하는 '전략기획지침'을 공개한 이후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군기무사가 이례적으로 현직 국회의원에서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이에 대해 권 의원이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입법부에 대한 도전행위"라며 반발하면서 논란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은 권 의원이 군사기밀을 공개했다는 지엽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본질은 따로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한미연합사가 대북 선제공격 계획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권 의원의 주장대로 한미연합사가 대북 선제공격 계획을 갖고 있거나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이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연합사의 존재 이유는 한반도 전쟁 억제와 북한의 남침 방어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와 국방부는 줄곧 선제공격 계획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만약 '군사기밀'이라는 외피를 쓴 선제공격 계획이 존재한다면,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기만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의 평화주의 정신까지 저버린 '위헌 소지'까지 있게 된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작전계획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와 국방부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0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결단코 선제 공격론이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 이뤄질 수 없다"고 밝혔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 역시 "모든 군사 대비 계획은 방어적"이라며 선제공격 계획 자체를 부인했다. 국방부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권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우리는 북한의 무력도발시를 대비한 한·미 공동의 방어계획을 갖고 있으나 '선제공격'과 관련된 어떠한 계획도 없다"고 해명했다.

2003년 1월 16일의 이준 장관의 발언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정부 관계자들의 해명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정부의 설명처럼 정말 선제공격 계획은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3년 1월 16일 이준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이준 장관은 국회 국방위 증언에서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우리 군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계획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도 대비책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발언이었다. 국방부가 2005년 10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는 북한의 무력도발시를 대비한 한·미 공동의 방어계획을 갖고 있으나 '선제공격'과 관련된 어떠한 계획도 없다"고 해명한 것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당시 이준 장관의 발언 시점이다. 그는 도날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2002년 12월 5일 회담을 갖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략기획지침' 문서에 서명했고, '우발계획'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이러한 내용은 럼스펠드가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우발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힌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앙일보>는 이준 장관의 발언 다음날인 2003년 1월 17일, 한미 양국이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리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이를 '우발계획'(Contingency Plan)이라고 명명하면서 2003년 7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준 전 장관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고 이에 대한 대응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은 한미간의 이러한 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발계획은 작전계획 '5026'...구분이 모호해진 '선제공격'과 '방어'

그렇다면 당시에 논의한 우발계획이란 무엇일까? 그 실체는 권영길 의원이 공개한 '전략기획지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를 보면 "작전계획 5027과 개념계획 5029를 보완하는 추가적인 작전계획 5026을 발전시킨다"며 "이 작전계획은 2003년 7월까지 수립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우발계획'이 작전계획 5026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작전계획 5026은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등 대량살상무기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보복 공격을 무력화시켜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전계획이라는 점이다. 이는 5026이 사실상의 선제공격 계획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준 전 장관과 럼스펠드 장관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우발계획'을 논의했다는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작전계획 5026이 한미 양국의 합의로 2003년 7월달에 수립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 국방부의 핵심적인 관계자로부터 이 계획의 존재를 확인했다. 2005년 5월 초에 펜타곤을 방문한 필자에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으나 5026이 있다고 확인해준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각종 작전계획에 '선제공격'과 '방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5026은 수도권 방어 계획이 핵심이지만, 미국이 북폭을 단행한 이후를 상정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선제공격 계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27 역시 기본적으로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계획이지만, 북한의 '확실한 남침 징후'가 발견되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유사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판과 오인에 의한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얼마전까지 논란이 되어온 개념계획 5029는 선제공격 계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계획은 북한 내부에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북한 내 위험 세력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군사 개입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북한이 남한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연합군이나 미군 단독으로 군사 작전에 나선다는 것은 전면전으로 비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처럼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선제공격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데에는 부시 행정부가 이른바 '예방전쟁'의 관점에서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무력 사용을 통해 그 위협을 제거한다는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한 데에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누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과연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험천만한 작전계획이 담긴 문서를 공개해 이를 공론화 한 권영길 의원인지, 아니면 선제공격 개념이 포함된 작전계획을 강요한 미국과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군 당국 및 정부인지를.

흔히 정부와 군대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비해야 할 상황이 있고 막아야 될 상황이 있는 법이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나 군사적 개입은 대비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막아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초강대국이자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에게는 정치의 한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정치의 실패'이자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권영길 의원의 군사기밀 공개는 정부와 군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아 국가안보를 보다 튼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정욱식 /  2005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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