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에 빠진 6자회담, 북미 고위급 회담이 필요하다
안개속에 빠진 6자회담, 북미 고위급 회담이 필요하다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11.14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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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6자회담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휴회에 들어갔다. 회담 사흘째인 11일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은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2단계 회담의 개최 일정을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에 논의하기로 결정하는 수준에 머물고 만 것이다.

당초 이번 회담에서는 지난 4차 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 대한 이행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공동성명이 '말 대 말' 공약 단계였다면, 이제는 '행동 대 행동' 단계로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장외(場外)' 변수가 회담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무기 수출 및 마약과 위조지폐 단속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기업들과 이들과 거래 의혹이 있는 기업 및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회담 시작 전부터 미국이 공동성명을 위반하고 있다며, 6자회담이 열리면 "따질 것은 따지겠다"고 벼렸었다. 이를 보여주듯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미국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신뢰 회복을 위해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경제제재는 6자회담의 의제가 아니라고 일축하면서, "북한은 비핵화 문제를 푸는 데 매우 고의적인 지연술을 펴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북미 양측이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한 채, 상대방의 의도를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핵문제가 '핵문제'만은 아닌 이유

북한의 위조지폐 거래 의혹 및 이와 연관된 '마카오 은행' 문제는 6자회담에 대한 북미 양측의 동상이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북핵 폐기에 의한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6자회담의 목표로 상정해온 반면에,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를 목표로 삼아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문제삼은 마카오 은행 문제는 6자회담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북한에게 핵 시설 가동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미국은 핵 동결로는 부족하며 바로 핵 폐기에 돌입해야 한다는 강경한 요구를 접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마카오 은행 문제는 미국이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며 이 문제에 대한 해명 및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특히 북한은 공동성명에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미 양측의 입장 차이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북미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미국은 북핵이 해결된 이후에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마약 및 위조지폐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해소되어야 관계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강경한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있는 동기를 약화시켜 핵문제 해결에도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핵문제 이외의 문제들이 핵문제 해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안개 속에 빠진 '6자회담'

이번 5차 회담이 향후 회담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휴회에 들어감으로써, 6자회담의 향후 전망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 6자회담 장을 박차고 나오기도 어렵지만, 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할 동기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휴회기간인 11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여러 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장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인 부시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공존 의지를 분명히 할 경우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

동시에 유럽연합(EU)이 상정하고 미국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결의안의 채택 여부도 관심거리이다. 또한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후원하고 있는 '북한인권국제대회'가 12월 초에 서울에서 열리는 것도 6자회담의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 주도의 대북인권정책이 북한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동성명 채택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하나는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북미 양측의 공약 사항의 이행 절차 및 그 수준에 대한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문제 이외의, 그러나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들이 곳곳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북미 양측의 신뢰구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미 모두 상대방의 불신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서로의 진위와 요구 사항을 직접 얘기할 수 있는 고위급 회담도 필요한 시점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무산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을 재추진해야 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욱식 /  2005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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