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녹이는 봄눈 같은 책들
추운 겨울을 녹이는 봄눈 같은 책들
  • 최종규기자
  • 승인 2006.02.28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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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좀더 추워야 하고, 추위는 앞으로도 한 달쯤은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다가오는 봄이 더 따뜻할 수 있고 올 한 해 우리 농사도 제대로 될 수 있어요. 올겨울은 조금 추운 날도 있었으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또 지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겨울답지 못한 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겨울도 춥다고 오들오들 떨고 있지 싶어요. 봄이 봄답지 못하고 겨울이 겨울답지 못하는데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들이 올바르거나 곱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비록 겨울답지 못한 겨울이지만, 이 겨울을 살며시 녹이는 봄 같은 책 세 가지 이야기를 짤막히 펼쳐 보겠습니다.


ㄱ.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사이토 미치오)

- 책이름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글쓴이 : 사이토 미치오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삼인(2006.1.5)
- 책값 : 10000원

우리 나라에도 틀림없이 ‘장애인 공동체’라는 곳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아끼고 돌보며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꿈을 펼치도록 도우려는 손길도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바라보아 주는 마음길이란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 만약 관리 규칙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규칙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까’라고 정리해 버려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롭게 활달한 의견이나 발상이 파묻혀 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37쪽〉


정신장애인들이 모여서 산다는 ‘베델의 집’. 정신장애면 어떻고 다른 장애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문제이고 골치입니다. ‘이런 장애인이 있대’가 아니라 ‘장애인이네’ 하고 바라보기만 하지 못하는 비장애인 문제입니다. 치우치거나 비뚤어진 생각을 씻지 못하는 우리들 문제입니다.

장애인은 장애인입니다. 장님은 장님이고 귀머거리는 귀머거리입니다. 앞을 못 보니 장님이고 소리를 못 들으니 귀머거리예요. 이런 낱말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괴롭히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장님’을 깔보는 말로 여겨서 ‘시각장애인’으로 돌려서 말하고 ‘장애인’을 ‘장애우’로 돌려서 말합니다. 우리는 낱말만 바꾸려 하고 우리들 생각과 몸짓은 하나도 안 바꿉니다. 비장애인 삶에만 맞춘 제도 또한 그대로 두려 합니다. 이러면서 무엇을 하지요? 껍데기만 그럴싸하면 되나요? 요즘 지하철에는 꽤나 큰돈을 들여서 ‘스크린도어’라는 것을 만드는데, 이것은 ‘비장애인 안전’만 생각하는 시설일 뿐 장애인도 함께 헤아리는 시설은 아닙니다(여기에 들이는 돈과 잽싼 움직임과 어떻게 짓는가를 보면 훤히 알 수 있어요). 더구나 우리네 교통 현실은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사람 대접을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가용 중심이고, 관리자 중심이거든요. 버스타는곳이고 전철역이고 앉을 자리, 걸상이 몇 없습니다. 사람들 거님길에 ‘턱’이 너무 높거나 많으면 휠체어 타기 아주 안 좋습니다. 게다가 비장애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도 아주 안 좋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기에도 참 나쁩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은 좀체로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못 느끼고 건의도 제대로 안 하지만, 건의를 받는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문제를 찾거나 고치려고도 하지 않아요. 이러니까 장애인 문제는 ‘그들한테만 문제인 것’쯤으로 여겨 버리겠지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는 작은제목으로 “문제투성이 ‘베델의 집’ 사람들의 놀라운 회사 창업 성공기”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네, 이런 창업성공기도 좋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더 재미있고 좋은 대목은 ‘장애인이면 어떻고 비장애인이면 어떠냐? 똑같이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건네는 데에 있습니다. 그저 즐겁게 어울리는 사람들, 규칙이나 틀로 서로를 옭아매려 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렇게 산다구’ 하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딱히 따뜻하지 않게, 그러나 구태여 차갑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남김없이 보여주면서 손을 내밉니다. 이 손을 장애인들 손으로 느끼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사람 손’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이야기책입니다.


ㄴ.새 만화잡지 《새만화책》

- 책이름 : 새만화책 1호
- 펴낸곳 : 새만화책(2006.1.20.)
- 책값 : 10000원

만화를 산업으로 여겨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나 장치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책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춤이든 노래이든 돈벌이로 삼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는 돈벌이에 앞서 문화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과 살고 있는 지금과 살아갈 앞날을 담아내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화로 돈을 벌 수도 있고 돈을 벌어도 좋지만, `우리 삶을 담는' 문화임을 잊어서는 안 되고, 돈에 앞서 누구나 즐겁게 누리고 맛보는 문화임을 내던져서는 안 돼요.

나라에서 만화를 문화산업이라면서 뒷배합니다. 만화를 가르치는 학교도 열고 여러모로 돕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뒷배하거나 돕는 만화란 `나라 안팎에 팔아먹을 수 있는 작품'에 그칩니다. 작품을 그리는 이 스스로 자기 세계를 가꾸고 넓히면서 보듬지 못하고, 작품을 즐길 이 나름대로 다 다르면서 고유한 세상을 맛보는 쪽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만화를 그리도록 돈이나 물질로 돕는 일은 좋지만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 마음과 삶을 가꾸는 데에는 눈길을 못 두기 때문일까요? 생각해 보면, 이 나라에서는 대학교에 들어간 뒤 회사원이 될 사람을 키우는 제도권 교육만 있지, 대학교에 안 가고 사회살이를 하는 사람을 가꾸는 교육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치는 아이들이 저마다 다 다른 일감을 찾아 즐겁게 자기 삶을 가꾸도록 이끄는 교육이 없고, 자기 세계를 들여다보고 이웃 세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꾸도록 돕는 교육도 없습니다. 이런 판에 그려지는 만화란 어떤 만화일까요? 판에 박히지 않고 틀에 박히지 않으며 뻔하디뻔한 짜임새를 넘고 물이 흐르듯 출렁출렁 자유로운 이야기를 도란도란 건네는 만화가 나올는지요?

《새만화책》은 판에 박은 듯, 틀에 박힌 듯, 뻔하디뻔할 짜임새를 딛고 서서, 이 땅에서 새로운 만화 문화를 고유하게 가꾸고픈 마음으로 묶어내는 만화 잡지입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디딥니다. 얼마나 오래 `버틸'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도 좋습니다. `새' 만화, `자유로운' 만화, 그리는 이와 보는 이 모두 즐거울 수 있는 만화, 우리 삶과 세상 이야기를 수수하고 털털하게 담아내는 만화를 딱 한 번, 어느 한 권에 담을 수만 있더라도 빛을 본 셈이요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화책을 보면서 느끼는 문제는, 이렇게 `다르면서 새로운' 만화밭을 가꾸려는 말만 넘치고 몸소 나서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첫 호를 낸 《새만화책》은 첫 호만으로도 반갑고, 앞으로 2호 3호 4호가 나온다면 그때마다 새로운 틀과 짜임새로 반갑겠구나 싶습니다.

- 1권에 만화와 이야기 실은 사람 : 새미 하캄, 앙꼬, 권용득, 고영일, 이경석, 김수박, 조지은, 김한민, 김은성, 뤼도빅 드뵈름, 아사카와 미쓰히로, 다쓰미 요시히로, 하나와 가즈이치

ㄷ.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이오덕)

- 책이름 :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 글쓴이 : 이오덕
- 펴낸곳 : 삼인(2005.11.25.)
- 책값 : 12000원

2003년에 세상을 떠난 이오덕 님은 한삶을 `교사', 곧 `선생님'으로 살았습니다. 마흔세 해 동안 교사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당신이 해 온 일과 살아온 모습은 `누구한테 어떤 지식을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았'어도 선생 노릇입니다. 스승 노릇, 선생님 노릇이었다고 할까요?

우리한테 무엇을 말하거나 가르치기 앞서, 또 글로 써서 이야기를 건네기 앞서 누구보다도 먼저 몸소 해 보이는 이오덕 님. 자기 스스로 해 보고 `할 수 있구나', `할 만하구나', `해 보니 좋구나' 하는 것들을 우리한테도 `우리 나름대로 해 보시오' 하고 가르치는 이오덕 님. 말만 번지르르하거나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우리보고 `그것도 못해?'라든지 `제대로 좀 해 봐!' 하고 다그쳤다면 어느 누구도 이오덕 님을 좋아하거나 우러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오덕 님이 우리한테 고마운 스승이요, 훌륭한 분으로 남는다면 말이 아닌 함으로, 말하면서 몸으로 함께 움직이기에, 생각과 실천을 늘 하나로 이어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이 들 뿐이지요 …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힌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힘듭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아이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렇게 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 〈117쪽〉


이오덕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 쉽습니다. 어려운 말도 없으나 자기부터 할 수 있는 일, 하면 좋은 일을 찾아서 겪은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선선히 받아들일 만합니다. 더구나 우리들도 늘 느끼고 아는 이야기예요. 느끼지만 몸으로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알기는 하지만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어렴풋하게 생각만 할 뿐입니다. 게다가 느끼고 알면서 이 소중한 앎과 슬기를 애틋하게 여기거나 돌보지 못해요.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낮추고 업신여기고 따돌립니다. 그래서 이오덕 님이 말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쉽고 우리도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제대로 실천을 못하는 한편 고맙고 소중한 슬기로 곰삭이지 못한다고 느껴요.


.. 참말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납니다. 놀면서 서로서로 마음을 알고, 말을 배우고, 슬기를 얻고, 몸을 키웁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는 병신이 됩니다 … 진짜 나라사랑은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풀과 나무와 곤충과, 그리고 이웃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에 저절로 가슴속에 새겨지는 사랑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마음껏 뛰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십시오. 사람교육과 애국교육이 여기서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 〈60쪽〉


마음을 열면 되지 싶습니다. 뜬구름 잡는 헛이름을 잡으려 하지 않으면 되지 싶습니다. 내 것으로 삼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즐겁게 껴안고 부대낄 만한 것으로 삼을 수 있으면 되지 싶습니다. 남에게 하라고 시키기보다 내가 먼저 스스로 하면 되지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부가, 제도가, 또 무엇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하면 되지 싶어요. 내 주머니에 돈 1000원이 있으면 추운 날 길에서 벌벌 떠는 거지한테 1000원을 줄 수 있습니다. 내 주머니에 돈 100만 원이 있으면 같은 거지에게 돈 1만 원이나 10만 원도 줄 수 있겠지요? 100만 원을 다 주면 더 좋습니다. 이렇게 마음도 생각도 몸도 활짝 열고 어깨를 펼 수 있다면,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을 수 있다면 이오덕 님이 쓴 책은 하나하나 소중한 열매요 가르침이요 밥이자 놀잇감임을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도 다 알고 있으나 실천할 생각을 조금도 못하고 있는 것을 일깨우면서 앞에서 이끌어 주고 있는 고마운 길잡이로 말입니다.


2006. 2. 28  / 최종규기자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http://www.epnews.net)과의 기사제휴에 의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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