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 신부의 평화 메세지> “구체적 사례 없이 보편적 평화 없다”
문정현 신부의 평화 메세지> “구체적 사례 없이 보편적 평화 없다”
  • 강찬호
  • 승인 2003.02.24 19:0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정현 신부의 평화 메세지

“구체적 사례 없이 보편적 평화 없다”

 

@ 강연에 앞서 문신부님이 꿈터 어린이들, 충현고교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주해야 우리자신이 사람대접 받는다. 자주해야 북미관계, 남북관계 이긴다. 자주를 통해 지구촌 평화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 “구체적 사례 없이 보편적 평화 없다”

문정현 신부는 거리의 신부, 싸움꾼 신부로 불려진다. 불평등한 한미소파개정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익산에 거주하면서 230만평 군산 미군기지 철수를 위해 싸우고 있다. 평상시는 ‘작은자매의 집’의 원장으로 중증 장애아들의 아버지로 살고 있다.

 

2003년 2월 21일 오후 7시 광명시평생학습원 2층 강당. 150여명의 광명시민들이 문정현 신부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행사는 미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광명지역대책위원회가 2003년도 광명시민들과 함께 하는 첫 사업으로 주최하였다.
7시가 조금 넘어 진행된 이 날 행사에서 1부 순서로 광명만남의 집 방과후 교실 꿈터 공부방 어린이들이 율동과 노래를 선보였다. 이어서 충현고등학교 교사팀이 신나는 율동 솜씨를 보여주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강연에 앞서 지팡이를 집고 무대에 오른 문정현 신부는 꿈터 어린이들, 충현고 교사들과 함께 어우러져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 문정현 신부님 강연에 환호하는 청중들 모습

 

“거리에서 싸움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격식을 갖춘 무대에서 강연을 하는 것은 몸에 맞는 일이 아니다”라며 문 신부는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을 통해 문 신부는 노무현 당선자도 당선 후에 소파개정 문제에 대해 ‘선북핵, 후소파’의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어, 소파 개정에 대한 의지가 반쯤은 꺾여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문 신부가 본격적으로 소파개정 문제에 참여하게 된 것은 97년 즈음이라며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88년 명동성당에서 미군철수를 외치며 투신 자살을 한 조성만 열사가 자신의 제자였으며, 동생인 문규현 신부가 방북사건이후 3.8선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된 일, 광주항쟁의 미군배후 설 등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참여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230만평 군산미군기지에 대한 모순이고, 그것이 불평등한 소파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야 그때부터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 신부는 이후 본인이 군산미군기지 되찾기 시민모임 대표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3,4년째 소파개정 문제를 위해 투쟁해온 과정을 담담하게, 때로는 목청을 높여가며 강의를 했다. 이렇게 현장을 지키는 싸움은 설날과 같은 명절에도 빠짐없이 진행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많은 미군범죄 사례들을 열거하기도 했고, 미군 폭격연습장으로 사용되는 매향리 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이나 난자된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우리 땅이 짓밟히는 것과 똑같다며 빗대기도 하였다.

문 신부는 의정부 미군기지 전신주 공사를 하다가 숨진 전동록씨 장례식이 있은 지 사흘만에 발생된 효순이, 미선이 살인사건이 월드컵 열기에 묻히지 않고 12월까지 광화문 한복판을 뜨겁게 달구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며 당시의 감회를 전하기도 하였다. 노무현 당선자의 시위 자제 부탁이후 촛불시위가 한 풀 꺾였지만 그리고 지금 소파개정과 관련하여 변화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의식변화다”라고 말했다. 또한 반미를 둘러싼 국민들 정서변화에 대해서도 “변명할 이유가 없다”라며 미군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죽어야 산다. 죽어야 지킨다.” “지구촌 가난한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며 광화문 에 타오르던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는 심정과 자세가 있어야 한반도와 지구촌이 살 수 있는 길이라며 촛불의 의미를 통해 지구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그는 한반도와 지구촌 평화의 길은 자주할 때만이 가능함을 거듭 강조하였다.“성질대로 해버리는 게 제일 쉽더라”고 말하는 문 신부는 흰 수염과 지팡이를 소파개정의 그 날까지 거리에서 휘날리겠다며 두 시간여 강연을 마쳤다.

 

 <광명시민신문 강찬호 기자(tellmech@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청누리 2003-02-24 19:08:36
광명에서 열린 강연중에 지난번 신영복 교수의 강의와 이번 문정현 신부님의 강의가 정말 가슴에 와닿는 강의였습니다. 주최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자주라는 말을 깊이 새겨봅니다. 한국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까? 신부님 말씀대로 죽어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자주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