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柳一韓)을 읽으면 문국현(文國現)이 보인다.
유일한(柳一韓)을 읽으면 문국현(文國現)이 보인다.
  • 여의도통신
  • 승인 2007.09.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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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회오리, 여의도 덮칠까 / ‘문국현 사람들’의 키워드 분석했더니… 
 
 2007년 09월 17일 (월) 09:08:52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솔직히 지금까지 문국현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몰랐다.”   “나는 문국현 사장을 잘 모른다. 출생지도 출신 학교도, 그 분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누구인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국현을 모른다. 그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위의 닮은꼴 발언의 주인은 각각 김종인, 이어령, 김정인이다(존칭은 생략하자). 앞의 두 사람은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종인은 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경제수석)이고, 이어령은 중앙일보 고문(전 문화부 장관)이다. 세 번째 인물은 설명이 필요한 무명의 인사다. 최근 오마이뉴스에 ‘파리 유학생이 3일간 분석한 문국현의 힘’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렸다.

이어령,김종인이 문국현 칭찬한 까닭

그렇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 3인은 왜 말문을 열면서 첫 마디를 “문국현을 모른다”로 시작했을까.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의 논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 그들의 부인(否認)은 반전(反轉)을 위한 보색(補色)의 임무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김종인과 이어령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난주 저녁에 처음 만나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관계는 거의 지연, 혈연, 학연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나와 문국현 사장 사이에는 그런 세 가지의 끈 가운데 하나도 얽혀 있는 것이 없다. 굳이 끈을 찾자면 일[事]을 통한 인연 그러니까 사연(事緣)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축사(祝辭)와 헌사(獻辭)로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단지 ‘2시간 동안(의) 대화’와 ‘일을 통한 인연’이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 고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

“나는 지난 2월 국회 연설에서 ‘제3의 세력이 등장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세력이 나와야 한다. 국가지도자에게는 정직과 클린이 기본이다. 백성은 현명해서 결코 ‘가짜 지도자’에 속지 않는다.”(문국현 대선출마 선언식에서 김종인의 축사 중에서)

“분명 문국현 사장은 큰 바다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다. 사색할 때에는 넙치처럼 파도에 흔들림이 없이 깊숙한 바다 밑 모래바닥에 엎드려 있고 행동할 때에는 헤엄을 멈추면 호흡할 수 없는 참치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오대양을 누빈다. 그리고 그가 이상을 향해 도약할 때에는 날치[飛魚]처럼 바다 위로 솟구쳐 허공을 비상한다.”(단행본 <문국현 솔루션>의 ‘내가 본 문국현’ 코너에 기고한 글 중에서)

김정인의 반전은 더 극적이다. 자신을 “파리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유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모든 정신이 논문에 가 있”는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흘에 걸쳐” 문국현이 던지는 메시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선언(宣言)을 내놓았다.    

“그(문국현-기자주)는 양심의 거울이 되어 우리 모두의 앞에 선다. 그는 자본에게 합리적일 것을 요구한다. 노동에게 근면할 것을 요구한다. 지도자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요구한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공동체 안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가난이 참을 수 없게 되는 때는 모두가 가난한 때가 아니라 부정한 자가 부유해질 때이다. 뛰어난 자가 겸손해할 때 그가 존경받는 것이다.” 

이제는 ‘차악 선택하는 게임’ 아니다

그것은 가히 ‘문국현 신드롬’이자 ‘문국현 회오리’였다. 그렇다면 이 신드롬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 회오리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 경로가 필요하다. 타의적 원인과 자의적 원인을 균형 있게 분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터이다.

우선 타의적 원인을 살펴보자. 검증논란에 휩싸였던 이명박의 경선 승리를 계기로 “유감스럽게도 (이번) 선거는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게임에 되었다”는 일각의 진단이 상징적으로 그 모든 것을 잘 말해준다. 실제로 이번 선거와 관련해 박성민(정치컨설팅 민 대표)은 “최악(最惡)을 피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 된 셈”이라면서 이렇게 냉소했다.

“애초에 ‘좋은’ 지도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는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해서 투표장에 간다. ‘흔쾌히’ 찍지 못하고 ‘마지못해’ 찍는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사정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도리어 상황은 더 심각한 것 같다. 경향신문의 이대근(정치에디터)은 지난 13일자 칼럼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을 ‘99% 열린우리당’이자 ‘대실패 연합’으로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독설을 퍼부었다.

“그들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이야기 하나 하자. 그것은 실패세력이 뭉치는 순간 불확실성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이 과연 집권할 것인가’라는 반신반의가 사라졌다…정권교체가 된다면 그것은 대통합신당의 공이 될 것이다…대통합이 기여할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이 한 바구니에 담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문국현의 관계설정에 대해서도 이렇게 훈수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무덤이다. 문국현이든 누구든 더 이상 죽음의 집으로 초대해서는 안 된다. 문국현 미풍이 불고 있지만, 이 신인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명백한 것은 그가 대통합과 손을 잡는 순간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이라는 점뿐이다.”  

이제 자의적 원인을 살펴보자. 물론 이것을 제공한 주인공은 문국현 자신이다. 아울러 ‘사람중심 진짜경제’나 ‘사람이 희망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유한양행 창립자인 고 유일한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한국 자본주의 진짜 원조는 유일한”

“유일한 박사는 가족에게 유산 한 푼 안 남기고, 사회에 환원했다.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비전과 능력으로 나라를 살리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정신’이다.”

문국현이 조선일보 9월 13일자 인터뷰 기사에서 한 말이다. 그가 유일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유일한은 어떤 인물인가?

“메이지유신 이후 500개의 기업과 자선단체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은 마쓰시다 고노스케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시부자와 에이치는 일본 자본주의의 원조(元祖)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원조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뽑을 수 있을까?”

이동희(전 서울산업대 총장)가 2년 전 한 강연회에서 자문(自問)했던 말이다. 잠시 후 육사 11기 출신인 그는 이렇게 자답(自答)했다. 

“나는 그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 할 사람은 삼성의 이병철이나 현대의 정주영이기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온몸으로 보여준 유한양행의 유일한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이동희는 “유일한 사장이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상공부 장관 제의를 받았으나 거부했으며, 유일한 사장의 후손 중 한 명은 유한대학이 있는데도 특채를 거부하고 다른 지방대학 전임강사 공개시험을 치른 뒤 교수가 됐다”는 숨은 사연까지 소개한 바 있다. 

중앙일보에서 최근 발간한 이코노미스트 900호(8월 14일자)가 대기업 간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질문 내용은 ‘존경하는 부자는?’이었는데, 응답 순위는 이렇게 나왔다. 

1위 : 유일한
2위 : 정주영
3위 : 이건희


이것은 12년 전인 1995년 월간중앙 신년호가 전문가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비교된다. 당시 월간중앙은 학자와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광복 50년-한국을 바꾼 100인’을 물었다. 당시 기업가 중 거명된 사람은 모두 8명이었는데, 순위는 다음과 같다.

6~10위권 : 이병철, 이건희, 정주영
11~20위권 : 김우중
21~30위권 : 박태준
31~40위권 : 유일한
51~70위권 : 황창규
71~100위권 : 조중훈
   

기업인 이름을 딴 최초의 도로 생겨

유일한이 유한양행을 창립한 것은 1926년 5월 24일이다. 두산, 경방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기업 중 하나인 유한양행은 그 동안 수많은 경영시스템가 기업문화를 도입하거나 선보여 왔다. 종업원지주제와 전문경영인체제의 도입, 사우공제회와 보건장학회의 설립, 재단법인의 설림과 전 재산의 사회환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창립 이후 유한양행에서 노사분규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도, 산업자원부가 2003년부터 주관하는 ‘이 달의 기업인’ 첫 수상자로 유일한이 선정된 것도, 기업인의 이름을 딴 도로 명칭의 국내 최초 사례인 ‘유일한로(路)’가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구로구 온수동~경기도 부천시)에 세워진 것도 그러한 내력들과 무관치 않다.

한편 유일한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70년에 합작회사로 창업한 유한킴벌리는 ‘제2의 유한신화’를 선보이며 21세기 한국경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한킴벌리가 선구적으로 추진해온 ‘4조2교대제도’와 ‘평생학습제도’. 이 두 가지 경영혁신모델은 수년 전부터 전 사회적으로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포스코, 한국타이어, 굿모닝병원 등 150여개의 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사회기관 등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다.

실제로 경제위기와 실업문제에 대해 문국현은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해 왔다. IMF 직후 기계가 가동을 멈춘 상황에서 남아도는 인력을 해고하기는커녕 4조2교대제를 도입해 오히려 33%나 더 뽑은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 51억원에 불과하던 순수이이 2003년 9백4억원으로 늘어난 것은 그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유한킴벌리가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한국능률협회 등 선정)과 ‘아시아 최고 직장’(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등) 등에 선정될 수 있었던 데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2004년부터 세계적으로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이 국제사회의 핵심가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미 22년 전부터 유한킴벌리가 전개해 왔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공익활동은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유일한을 읽으면 문국현이 보인다.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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