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토요 거리 마켓을 다녀왔다.
홍대 앞 토요 거리 마켓을 다녀왔다.
  • 박정아
  • 승인 2007.10.26 0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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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4번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면 '먹고 싶은 거리' 아니, '걷고 싶은 거리'라는 상업지구가 나온다.

먹고, 아니 걷고 싶은 거리 맨 왼편에 있는 주민광장.
그곳에서 매 주 토요일마다 00마켓이 열린다.
00마켓은 00안에 무엇이든 허용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무엇이든 허용한다거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말은 늘 문지방 앞에 선 사람을 고민하게 한다.

'나는 이 판에 어떻게 섞일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왜 섞이고 싶은가.'

달팽이 모양으로 맴돌며 마켓을 둘러보다가 조그마한 좌판 펼쳐보고 워크숍 참여하고 간식도 얻어먹고...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흐르게 되고 어느덧 나도 이판의 물이 들게 된다.
그 즈음에 '왜'라는 고민이 시작된다.

처음 우리가 마켓에 물건을 팔겠다고 작정한 데에는 이미 고질이 되어온 방과 후 학교의 운영난이 있었다.

교육비에 의지해서 학교의 운영을 하자면 아이들의 들고 남에 혹은 교육비를 내고 못냄에 흔들리는 미묘한 갈등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원을 받을 것인가.
아직은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벌이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거래를 시작함에 있어서 필요 외의 소비를 하게 하는 장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또 답답한 생각.

ㅎㅎ 그럼 어떻게 벌이를 하나.

버려지는 물건을 살려내고 잊혀지는 물건을 깨우쳐서 의미를 재부여하자.
잠시 재활용 공예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지고 두 번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던 물건들이 떠올라 아찔한 기분이 된다.

버려지는 것을 다시 보되 예술적 문화적 감각을 살려내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
물건을 되살리려면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재료로 인식할 것인가,
그 자체의 물격을 인정하고 물건의 자존감을 살리도록 도울 것인가.(이 부분에서 물건이라 부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도 되는가?)

00마켓에서 물건들을 만나며 배운 점은 그들의 영혼이 모두 살아 꿈틀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각종의 물건들이 각종의 에너지를 휘휘 돌리며 나름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하는 중이였다.
그에 사람의 손과 숨을 불어 넣어 새로운 살이를 시작하게 돕는 일.
우리의 장사, 거래, 돈벌이를 그렇게 한 번 해보자.

아이들이 그리고 난 수채화와 재생 종이를 묶어 공책을 만들어 팔아 본다.
조각 천을 꿰메어 도롱이 인형을 만들어 팔아 본다.
색색의 실들을 엮어 팔찌 목걸이를 만든다.
목걸이에는 학교 구석구석에서 먼지 옷을 입고 굴러다니는 숨은 보석들을 주워 달아 본다.
예쁘다. 특별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연인들, 학생들, 아이들...
우리가 늘어놓은 물건들이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는  진화된 반생명체라는 것을 알까.
물론이다.
팔찌 하나를 거래하면서도 우리는 머리를 맞대어 색을 고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눈빛을 교환한다.

짤강짤강 돈바구니에 돈이 들어온다.
들어오는 돈들도 다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어 우리에게 이야기하러 왔다.
주고받음이 의미 있고 돈이 돈 같아지는 그런 거래를 하자.
보여 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따뜻한 것들을 나누는 그런 시장을 하자.


벌써 바람이 시리고 엉덩이에 굳은살이 배긴다.
다섯시 반.
파장이다.
시장 가득하던 햇살도 쓸쓸한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주섬주섬 늘어놓은 물건들을 걷는다.
다음 주엔 또 어떤 워크숍이 열릴지, 어떤 물건들과 사람들과 재미있는 놀이들이 준비될지...
오늘 한 판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판을 기대해본다.

<글쓴이 박정아님은 노온사동에 자리잡고 있는 방과후 대안학교 구름산자연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지난 20일 홍대 거리 마켓에서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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