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여성의전화, 10년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광명여성의전화, 10년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 광명여성의전화
  • 승인 2007.11.1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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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여성의전화 10주년 좌담회...22일 기념행사 진행. 

광명여성의전화(회장 전영미)는 오는 22일 오후2시에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창립10주년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 10년의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과 함께 지역인사들과 여성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로 진행된다.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함께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기념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광명여성의전화는 이날 지난 10년의 활동을 묶어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에 담기위해 지난 11월 6일 광명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지난 10년의 과정과 미래를 전망하는 좌담회를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광명여성의전화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하기위해 좌담회 전문을 게재한다. 

좌담회는 강은숙(창립 멤버, 전 회장),김성현(지역자치위원회 위원, 회원활동 4년, 목사), 신영옥(상담원, 회원활동 10년, 전업주부), 유승희(창립 멤버, 국회의원), 이성숙(상담원, 회원활동 5개월, 전업주부), 이희숙(전 상담소 상근활동가, 회원활동 5년, 회사원), 전영미(회장), 정금숙(전 부회장, 회원활동 7년, 자영업), 한윤정(회원사업 담당 상근활동가)씨가 참석했고, 사회는 강은숙 전 회장이 진행했다. 

이하 좌담회 전문

- 강은숙 : 먼저 광명여성의전화를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됐는지 그 얘기부터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초기 창립 멤버이신 유승희 의원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 유승희 : 96년도에 준비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학생운동 하고 구로동에서 노동운동도 하고 그러다가 노동운동이 퇴조하면서 시민운동이나 지역운동을 해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역운동의 하나로 시작했어요. 아는 선배가 광명에 여성의전화 만드는 게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못했어요. 준비기간을 1년 정도 했었는데 속으로 앞으로는 아줌마들하고 조직활동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정치인이라 표 떨어져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웃음) 정말 힘들었어요.

- 강은숙 : 96년도에 창립준비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했는데 중앙에서 지부로 승인을 받지 못했어요. 그게 1차 창립준비위원회였구요, 그리고나서 다시 2기 창립준비위원회를 꾸리게 됐는데 그때부터 제가 같이 했어요. 그런데 1기 준비위원회때 많이 힘드셨나보네요.

- 유승희 : 정식으로 출범하기 1, 2년까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금방금방 잘 만들기도 하던데 그때는 원리원칙에 맞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접근했어요. 그냥 편하게 수다 떨듯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질 않아서 저도 그렇고 그때 같이 했던 분들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최홍자 선생님인데 위암3기 판정받고 치료받은 후 회복기였을 때 우연히 저랑 만나서 같이 활동했어요. ‘저렇게 어렵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는데 내가 그만두면 안 되지’ 생각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 강은숙 : 최홍자 선생님은 초창기부터 한 2003년까지 감사로 활동하셨어요. 그런데 작년에 위암이 재발해서 그만 유명을 달리 하셨어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데요, 어쨌든 전국 여성의전화 지부 중에서 유일하게 재수해서 지부 승인 받은 곳이 광명입니다.

- 유승희 : 정리할 것인가, 창립할 것인가 기로에 있을 때 강 전 회장을 만났어요. 같이 하자고 하소연했지요. 저는 그때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놓았던 때라서 많이 하지는 못했구요, 강 전 회장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으면서 생존할 수 있는 틀을 닦아놓았다고 생각해요. 조직이 몇 사람 힘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초기에는 아주 헌신적으로 안 하면 어렵거든요. 초창기에 살아남으면 그 다음에는 생존할 수 있게 되죠.

- 강은숙 : 저를 띄워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다른 분들은 여성의전화 회원이 되기 전에 여성의전화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셨나요?

- 신영옥 : 들어 보긴 들어 본 거 같아요. 처음에 조미수 의원이 이런 교육이 있어 받아 보라고 해서 신청했어요.

- 강은숙 : 1기 여성상담학교 말씀하시는 건가요?

- 신영옥 : 네. 교육받고 났더니 조의원이 “교육 받았으니까 활동도 해야지”그래서(웃음) 그렇게 10년이 흘렸죠.

- 강은숙 : 다른 분들은 어떠셨어요?

- 이성숙 : 저는 사실은 여성의전화를 2년 전인가...상담 때문에 알게 됐어요. 여기는 여성의전화가 없는 줄 알고 다른 여성의전화를 소개시켜 준 기억이 나네요. 여기는 우연히 교육 때문에 알게 됐어요. 그 동안 광명여성의전화가 있는 지 잘 몰랐어요. 관심이 없기도 했고  제 나름대로 못 느끼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홍보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활동한 지 1년이 좀 안 됐지만,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요. 가장 많이 아는 것이 가정법률상담소, 법률공단에 대한 정보는 있더라고요. 전화번호부에도 여성의전화는 안 써 있고요.

- 김성현 : 일단 여성의전화는 언론을 통해 중앙 본부에 대해서는 알아요. 사안 터지면 나오니까. 그런데 아직도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별도 사이트로 지금도 안 떠요. 뒤에 뜨거든요. 가령 가정법률상담소는 대표 브랜드로 나오는데. 광명은 아직도 엉뚱한 곳에 링크가 되어 있어서 페이지를 찾을 수가 없다고 나와요. 온라인 상의 광고는 거의 포기했다고 생각해요(하하). 제가 인터넷으로 회원가입하고 6개월이 지나도 반갑다는 얘기 안 하더라요(하하). 종교기관이나 관공서에 브로셔를 꾸준히 가져다 놓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데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니까...

- 강은숙 : 아픈 곳을 찌르시는군요.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거나, 재밌었던 일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 정금숙 : 제가 여성의전화 들어온 게 2000년도 같은데요. 그 전에 생각했던 여성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답습되어 오던 삶에서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 동기가 되지 않았나, 내가 누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잡을 수 있게 했어요. 딸들에게도 일부러 교육을 따로 시키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할 수 있었고요. 활동 초기에는 남편이 비아냥거리면서 “여성의 전화에서 배웠니?”, “여성의전화에서 그렇게 가르치니?” 그러더라고요. 여자는 분홍색 옷 입어야 되고 남자는 파랑색 옷을 입어야 하고. 예전에 우리 오빠는 빨간 양말을 신어서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하하). ‘여자니까, 남자니까’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내 삶에서 발전적인... 정금숙이라는 이름을 불렀었고, 내 이름을 “정금숙입니다.” 자신 있게 표출할 수 있게 됐구요. 그 전에는 누구 엄마라고 불렸잖아요. 최근에 가장 좋았던 건 제 아이가 이번에 시인이 되면서 호를 만들었는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하람'에 엄마 아빠의 성을 같이 써서 kj를 뒤에 붙였어요. 내가 특별히 그렇게 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참 고마운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 강은숙: 개인적으로 논문 때문에 정선생님을 인터뷰를 했는데, 여성의전화를 만나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들으면서 ‘여성의전화 활동이 헛되지 않았구나.’ 정말 감동받았고  흐뭇했어요.

- 신영옥 : 저는 교육을 받고 나서 처음 상담에 투입됐을 때, ‘제발 전화야 오지 마라’ 그랬어요(웃음). 너무 부담이 되더라구요. 교육을 받고 2달 후에 보험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때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남편이 그러는 거에요. 나와 여성의전화 활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구요. 그래서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 지는 내가 활동하면서 판단하고 결정하겠다.” 그랬는데 10년을 쭈욱 하게 됐네요. 상담을 하면서 내가 느낀 거는, 상담 하면서 맞았다, 외도를 했다, 통화 내역서 보니 이랬다, 이런 얘기를 접하면서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에요. '마음이나 경제적으로나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남편이 좋은 사람이고 업어줘야겠구나 생각했어요.

- 강은숙: 신선생님이 1기 상담학교 출신이셔서 초창기에 시도 때도 없이 참기름, 떡국 등을 팔은 거 기억나실  것 같아요. 재정부장을 맡기도 하셨고...

- 신영옥 : 재정부장 때는 책임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돈에 팔촌에 열심히 팔러 다녔어요.

- 김성현 : 총회 자료집을 쭉 보니까 열심히 팔고 다녔더라구요..

- 강은숙 : 그랬죠. 열심히 팔고 회원들에게 떠 넘기기도 하고(하하). 십전대보탕도 팔고 설날에는 떡국 팔고 생활한복도 팔았어요. 일년 내내 끊임없이 팔았어요. 지금은 여유로운 거죠.. 그 때는 시민운동장에서 행사 있으면 먹을 거 팔고... 겨우 30만원 남는데도 하루 종일 떡볶이 만들면서 열심히 팔았죠. 그 때 만원짜리 한 장 쓰더라도 재정부장 눈치보고 “꼭 써야돼?” 이런 말을 들었죠(하하).

- 유승희 : 초창기에는 꽃도 팔았어요. 오영숙 전 회장님이 제안을 한 거였는데, 졸업식 때 꽃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그래서 한 150만원 모았어요. 그게 그 때는 큰 돈이었고, 종자돈이 됐어요.

- 강은숙 : 유일한 남성 분이신 김성현 목사님은 여성의전화 활동이 어떠셨어요?

- 김성현 : 저야 여기 오면 역차별당한다는 느낌을 받죠(하하). 물론 여성의전화 자체가 여성인권단체니까... 근데 남자가 배우러 오는 것도 안 되나요? 교육 받는 데도 꼭 여성만 받아야 한다고 그러고... 성차별이 심해요. 가려다가도 못 가요(하하). 저야 여기 편이니까 넘어가지만, 탄압 받는 남자들의 입장에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전영미 : 최근에도 교육 받으시는 분들 보면, 남자들의 경우 한 명 두 명 정도에요. 그 분들이 처음에는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끝날 때는 결과적으로는 그 분들이 남더라구요.

- 김성현 : 저는 여기 올 때, 목사니까 남의 가정사를 많이 보잖아요. 부인 얘기 들어야 되고 남편 얘기 들어야 하고, 나는 다 알고 자기들 서로는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그런 문제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잖아요. 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못하면 대책 없이 사고를 친다구요. 조금만 수습하면 잘 살 수 있는 부부를 찢어 놓기도 하고, 그래서 여성의전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우리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연결될 만한 고리를 많이 못 풀어 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열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약간 매너리즘의 경향성도 보여요. 총회 자료집을 보니까 새로운 것이 포함되거나, 디자인이 변한다거나 그런 변화가 없어졌어요. 긍정적인 결과를 보다보니까 우리가 운동성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네요. 저도 목사 된지 15년 됐는데, 내 스스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재미보다 요즘은 두려움을 느껴지고... 여성의전화도 10년을 고비로 돌파를 해야 하지 않을까...

- 강은숙: 실제로 조직이 일정정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기에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안정에 취해있으면 퇴보하는 거고 아니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겠죠. 어떻게 하면 퇴보가 아닌 도약이 될 수 있을까요? 예전의 열정을 계승하면서 미래를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 강은숙: 이희숙 회원은 2002년에 평생교육사 실습으로 여성의전화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상근활동도 했는데 어떠세요?.

- 이희숙 : 2월이었어요. 저는 그때 여성의전화를 처음 들어봤어요. 처음 기억에 남는 것은 강회장님 의상... 숄을 두르고 점심 식사 하고 바삐 사무실로 들어오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그 때는 조금 더 열악했어요. 민주빌딩에 있었는데 점심때마다 집에서 가져온 걸로 준비해서 먹고... ‘상담이 진짜 올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담도 많이 오고, 상담일지 내용 입력하면서 보니까 별 사람 다 있고... 그리고 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2003년도에 어린이날 행사 사무국 맡았을 때, 박 터뜨리기 한다고 박 빌려오고 전단지 붙이러 다니고 그러면서 처음에는 ‘내가 이런 걸 왜 하지’ 그런 생각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여자지만 남자와 같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열등감이 많았는데 사람을 바라볼 때 남성, 여성보다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보게 되고 사람은 다 같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서 자신감도 생겼어요. 오늘도 여기 오면서 느낀 거는 마음이 편해요. 올 때마다  그냥 여성의전화라는 공간 자체가 결혼은 안 했지만 친정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거 같아요.

-강은숙: 그 때가 시민단체협의회 사무국 맡았을 때라 일이 굉장히 많았어요. 어린이날 행사 사무국을 맡으면 코너행사는 많이 안 했는데 우리는 전체 행사를 총괄하면서도 코너행사 4~5개를 하고 그랬어요. 그 때 고생들 많이 하고 힘들었지만 잘 치러냈고, 평가도 좋았어요. 이성숙 선생님도 한 말씀 해주세요.

- 이성숙 : 아직 1년도 안돼서(하하). 여기 와서 나를 안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집 밖을 거의 안 나가고 있다가 나라는 사람을 거의 잊고 살았는데, 교육 받고 하면서 엄마, 부인, 며느리 역할 떠나서 나를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많이 됐던 거 같아요.

-강은숙: 실제로도 자기 이름을 몇 년 만에 불러본다, 들었다, 이런 말들을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얘기 혹시 들어보신 적 없었나요? 여성의전화 가더니 드세졌다는 등, 대가 세졌다는 등...

- 이희숙 : 거의 다 그랬을 거 같아요.

- 김성현 : 아니, 제가 만난 분들은 다 좋은데. 아주 부드러운신데(웃음).

- 이성숙 : 대부분 여성의전화에 있다고 하면 무슨 운동권에서 남자들 타파하고, 개혁하고 여자를 억누르는 인습을 타파하고 그런 인식들을 하고 매스컴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부터...

- 전영미 : 이번에 회지가 발송됐잖아요. 그런데 인상들이 왜 이렇게 강하냐고, 표지사진 보고, 결의대회 있었냐며 표정들이 만만치가 않다고 그러더라구요. 여성의전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 강은숙 : 아직도 고정관념 강한가 봐요. 한 쪽에서는 상담기관이라고만 생각하는 반면, 한 쪽에서는 열혈 투쟁가들만 모여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죠.

- 전영미 : 접근성이 약하죠, 그런 면에서. 저도 여기에 들어오기 전엔 서울여성의전화 딱 한번 접해본 적이 있어요. 아시는 분이 여성의전화라는 곳이 있는데 가입해서 활동해 보지 않겠냐고 권유해서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후원하기로 결정해서 그러고 있다가 신입회원교육에서 접해봤는데 강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자연스럽게 부침개 부쳐 먹고 점심은 각자 돈 내서 먹고...(같이 웃음). 놀랬어요. 재정이 열악하구나 하고 이해를 하긴 했지만. 총회에 한 번 참석하고 그렇게 여성의전화 행사에 참석을 많이 안 했는데, 그러다가 책임을 맡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총회 자료집을 솔직히 그냥 넘겼죠, 안 읽어봤어요. 책임자가 되고 보니까 여성의전화가 수많은 일들을 해 왔더라구요. 새삼스럽게 알게 됐어요. 행사도 같이 참여해 보고 그러다 보니 이거는 저한테 맞는 거더라구요.. 예전에 제가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앞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캠페인 나가면 찾아다니면서 하고 그런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활동은 대표 된 지 얼마 안 된 짧은 시간에 후원의 밤을 맡았던 거에요.. 다른 행사는 같이 참여하면 되는데 후원의 밤은 일 년 농사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직책 맡은 지 4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행사였어요. 전에 회장님이 일구어 놓은 것을 보고 굉장히 부담이 되더라구요. 물론 광명지역에서 일은 하고 있었지만 지역에 보면 단체장들을 거의 접할 일이 없었는데, 그 분들을 일일이 접하는 것이 저한테는 크나큰 시련이었어요. 한 번은 갔다가 눈물도 나오는 상황도 있었고 어떤 때는 쾌히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성황리에 끝났는데, 지금 이제 쭉 오다 보니까 이제 또 10주년이더라고요(하하). 10개월 됐는데 큰 행사가, 10년 만에 처음 하는 큰 행사를 치르게 된 거죠, 이 초년생이(하하). ‘이것도 내 업보구나.’ 생각하고, 지금도 후원인 리스트를 훑어  보면서 즐겁게 여성의전화를 많이 도와주실 분들을 찾아가려 하고 있어요. 저희 가정은 양성평등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재산권은 안 해 봤어요. 공동명의는 안 해 봤거든요. 근데 내가 여성의전화 회장이니까 솔선수범해서 해야 겠더라구요.. 그래서 남편과 추진 중에 있어요.

- 강은숙 : 남편분의 반대는 없었구요?

- 전영미 : 그런 건 전혀 없구요, 이 일을 시작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일 시작할 때도 설거지는 제가 한 번도 안 했어요. 가정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믿고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줘요. 여성의전화를 맡을 때도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중간자로서 오히려 제가 적정하다고 다른 사람 아닌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줬어요. 그래서 지금도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김성현 : 여기는 남편이 좋다는 점이 공통점인 거 같아요(하하).

- 전영미 : 여성의전화 하고 나니까 더 좋아졌어요(하하).

- 강은숙 : 하긴 목사님은 모임 하다가도 애들 밥 해줘야 할 시간이라고 가니까...

- 김성현 : 당연하니까...(하하)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 강은숙 : 다른 분들도 뒤에서 여성의전화 활동에 남편이 적극 지지하시는 거죠?

- 전영미 : 적극 지지죠(하하). 저는 여기 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 그랬죠.

- 강은숙 : 그런데 안 그러신 분도 계시죠. 정금숙 선생님은 처음에는 안 그렇다고 했죠? 아까 말씀 하셨듯이 여성의전화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주니 하면서...

- 정금숙 : 나한테는 비아냥거렸죠. 그런데 밖에 나가면 우리 와이프가 여성의전화 활동 한다고 자랑하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저 사람이 내가 여성의전화 안 나갔으면 나를 뭐라고 소개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의전화 부회장이야.” 이러지를 않나. 제가  학교 강의도 나간다고 했는데 한 학교 갔다 왔거든요. 그런데 광명시 전 학교 강의를 나간다고 자랑을 했더라구요(웃음). 그래서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이 사는 사람도 좋은 것은 아나봐요.

- 김성현 : 그렇죠. 굴복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인정해 주기는 싫은데, 이미 마음은 그렇게 되어 있고. 다른 데서는 그런 내용을 전파하고 있고 이미 넘어가 있지만, 가끔 불편하니까 확인해주고 싶지 않은 남성 심리가 아닌가...

- 이성숙 : 매스컴에서 여성의전화를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다른 거 같은데 지금은 여자들 상담해주는 쪽으로 많이 인식을 하더라구요. 광명에서도 대중 속에서 여성의전화가 있다는 것을 많이 알려야 될 거 같아요.

- 김성현 : 그래도 광명이 훌륭하더라구요. 전국에 26개 지부가 있는데, 실제 그걸 둘 수 있는 도시 규모가 다른 더 큰 지역에서도 없는데, 그 보다 작은 광명에 여성의전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경기도도 보면 여성의전화가 거의 없어요. 처음에 소수의 고생한 분들의 덕이지만.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봐요.

- 강은숙 : 저는 여성정책모임으로 목사님과 같이 했었는데, 목사님이 시 산하에 있는 위원회 분석한 거는 아직도 공무원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어요.

- 전영미 : 공무원들 사이에서 시민단체 중에서 제일 체계적으로 일 잘 하는 곳은 여성의전화라고 꼽더라구요. 뭐, 특히 정책토론회 같은 경우가 공무원들 세계에서 이슈였나 봐요. 지금도 얘기가 계속 나오더라구요. 여성의전화 하면 자기들 머릿속에 그게 각인이 되어있다고...

- 강은숙 : 2003년도부터 정책토론회나 간담회 형식으로 해 왔는데 김성현 목사님이 함께 했었죠. 공무원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해 주니까 비판받는 게 있긴 하지만 너무나 좋다고... 시민단체 하면 비판만 하고 대안 제시는 못한다고 대부분 인식을 하는데 그래도 여성의전화는 비판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나름대로 대안 제시를 할 수 있는 단체다, 이런 의견들을 주시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작업을 전문가가 한 것이 아니라 우리 회원들이 모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하고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광명시 여성발전 5개년 계획 점검 토론회 하는 것 잘 준비해야죠.

- 김성현 : 그건 맞는 것 같아요. 광명에 있는 단체들이 각자 자기 역량을 갖고 역할을 잘 하길 바라는데, 종합적이기만 하지 특화된 전문성이 없다는 비판이 있어요. 여성의전화는 어차피 타겟이 분명하니까, 투사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상담은 상담대로 내면의 것도 가고 시위해서 빨리 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제대로 된 파트너가 돼야 서로 신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하고 싶은 일은 앞으로도 많아요. 제가 광명 말고 전국의 기초의원들을 많이 아는데 그 네트워크에서 서로 조례문제를 같이 계속 공부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발전을 위한 과정을 밟아 가고 있거든요. 그런 정보를 다 모아서 광명에서도 그런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여성의전화 정책 팀에서 제시할 수 있어야 제대로 뿌리 내리는 모습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연대모임에도 불가피하게 참여해야 하지만, 연대모임이 작은 축으로 보일 만큼 우리만의 역량을 점점 커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전에도 얘기 했지만 500명의 회원이 필요해요. 그래도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100명이 될 수밖에 없어요. 항상 비율이 그 정도거든요. 회원이 아무리 많아도 20% 정도가 활동을 하게 되니까, 500명 회원 확보를 위해 주안점을 두고 노력해야 할 것 같고, 파트가 정확히 나눠진 전문화된 모습이 우리에게 절실한 것 같아요. 광명이 핑계 대기 좋은 것이 너무 작은 도시고 정주율이 낮다 이러는데 결국 그것은 핑계구요. 우리는 완전히 뿌리내리는 것이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안착을 한 상태이지만, 이 상태로만 가면 그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여성의전화가 간판만이 아니라 활동을 통해 광명이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시정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회원은 500명 만들고 내용을 채우고 역할이 분명하면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니까 골고루...

- 전영미 : 사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최근에도 느낀 건데 우리만의 사상을 갖고 우리 재정이 튼튼하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누가 자기 사비 털어서 줄 것도 아니고 제일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 강은숙 : 회원이 확대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인데...

- 전영미 : 회원이 500명이면 정말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항상 사무국회의에서도 방법을 제시하는데, 외부에서 듣고 와서 방법을 제시하고 굉장히 많은 안이 나와서 한가지씩 하고 있는데, 목표를 500명으로 한다,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거든요. 500명이라면 모든 것이 풀리겠네요.

- 김성현 : 그렇죠. 모든 게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는 규모니까...

- 강은숙 : 가구 수를 따져 봐도 10만여 가구 밖에 안 되니까, 500명이면 그 중 얼마 안 되니까...

- 전영미 : 희망이 보이네요. 500명이면 저희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랑도 맞아 떨어지니까 희망이 보여요.

- 강은숙 : 2004년부터 여성의전화는 회원단체이고 지역실정에 맞게 지역문제를 해결에 나가는 지역운동 단체이다, 이런 것들을 확인하면서 거기에 맞춰서 회의체계나 활동 내용을 바꾸어 나간 것들이 있었어요. 나름대로 성과가 보이는 부분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을 거라고 봐요.  회원들이 피부로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전보다 연락도 자주 하고 회원들이 함께 만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부분들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다고 느껴지시는지, 아니면 ‘옛날 그대로야. 변한 게 없어.’ 라고 느끼시는지. 지도부와 상근활동가의 이런 노력에 대한 성과나 느낌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 유승희 :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건 여성이잖아요. 지역의 실질적인 주인은 여성이고 아이들인데 정책 결정 과정이나 이런 데서는 소외되어 있어요. 앞으로 여성들이 더 많이 활동해서 지역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해야 해요.

- 정금숙 : 회원 가입하고 후원해주시는 분들 보면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바라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주변에서 하더라구요. 그런데 요즘은 안부 문자가 오니까, 여성의전화가 이렇게 회원 관리를 한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 강은숙 : 행사 있다는 문자 말고 갑자기 '오늘 낙엽이 좋아요.' 같은 뜬금 없는 문자도 필요해요.

- 전영미 : 그 동안 보니까 사무국에서 부담만 드렸어요. 참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담이 아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 정금숙 : 사실 전에 보낸 문자 메시지는 항상 부담스럽다라는 느낌, 불러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행사에 참가해라... 그런데 지금은 그냥 안부 문자도 오고 그러니까 자신 있게 여기는 회원 관리는 이렇게 해 준다고 말하게 됐거든요. 행사 참여 안내하는 문자가 아닌 다른 문자를 받고 보니 전화를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정말 고맙습니다(하하).

- 전영미 : 회원의 날 행사를 하더라도 굉장히 다양하게 하거든요. 이번에도 비누 만들기, 숲 해설 등 어떻게 하면 회원이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 강은숙 :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끊임없이 문자 드리기도 하고 전화 연락도 하면서 회원과 가까이 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회원 입장에서 이런 것들은 아쉽다, 보완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이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 정금숙 : 저는 좋아요. 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 이희숙 : 저는 문자 못 받았는데요.

- 강은숙 : 아니, 우째 그런 일이...

- 이희숙 : 회지나 우편물은 받아보고 있는데 문자는 받아본 적이 없어요.

- 한윤정 : 다 체크한다고 하는데도 꼭 그런 일이 생기네요. 확인해보겠습니다.

- 강은숙 : 우리가 회원단체다 얘기 할 때에는 회원이 단순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을 꿈꾸는 거거든요. 그건 지금도 유효해요. 사업 수를 줄이더라도 회원과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명여성의전화히 사업 수가 많은 것 같아요. 이게 관성의법칙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하나의 사업을 하더라도 최대한 회원의 의견을 모아서 같이 해 나가려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상담원 모임에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얘기가 돼서 하는 것은 좋지만 상담 소장이 '우리 이렇게 합시다! 따라오세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여성의전화가 회장이 하는 것, 상근활동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 내가 하는 만큼 만들어지는 것, 그래서 개인도 발전하고 더불어 단체도 발전하고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 전영미 : 여성의전화 목표가 그 단체가 크는 것이 아니고 회원 각자가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단체에서 하는 것입니다.

- 강은숙 : 그래서 개인이 성장해서 단체가 저절로 크는 것...

- 전영미 : 그렇죠.

- 이희숙 : 저 같은 경우는 여성의전화가 별천지에요. 회사 다니면서 느끼는 거지만 작은 회사라 다 해서 여직원이 2명밖에 없거든요. 회사 생활 하면서 갑자기 제 삶이 후퇴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성의전화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회원단체로서 회원이 주체가 되어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여성단체로서 여성을 위해서 조금 더 접근해서 활동했으면 해요. 괴리감을 많이 느껴요 여기서 일 할 때는 몰랐는데 회사 들어가니까 너무 다른 세계인거에요. 남성조직에 발을 들여 놓았더니 너무 달라요. 변화를 시켰으면 좋겠어요. 몇몇 사람의 힘으로는 어려우니까 여성의전화 같은 단체들이 힘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 강은숙 :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고 각각의 기업이 바뀌어야죠. 예를 들어 성희롱예방교육이 의무화 되면서 적어도 대기업은 굉장히 의식을 많이 하잖아요. 광명여성의전화히 소규모 사업장은 힘들지만. 그런 것이 조금 더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면 아주 작은 소규모 사업장도 바뀌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양성평등한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해야죠. 이전에 어떤 상근활동가가 이렇게 얘기하더라구요. 여성단체 일을 하면 안 좋은 것은 돈을 별로 못 버는 거지만, 여기 문화가 너무 좋다, 여기는 위계질서가 없고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뜻이 맞으니까, 예를 들면 아하면 어하고 바로 통하니까 그게 너무 좋아서 일을 그만두지 못하겠다, 다른 곳에 가면 숨이 막힌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 이희숙 : 문화가 다른 것도 그렇고, 정말 다른 것은 여기 안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상의를 해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데, 회사에 들어가니까 그 체계에 밀려서 주어지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리고 항상 똑같은 일상의 반복...

- 강은숙 : 그래요. 여기는 누구든지 내가 하자고 하면 할 수가 있어요.

- 이희숙 : 네. 여성의전화에서는 내가 리더가 될 수 있는데 회사는 그런 게 없어요. 리더는 오너고 밑의 사람들은 그냥 서포터 하는 것 뿐이에요.

- 강은숙 : 여성의전화는 내부에서 합의만 되면 누가 제안하더라도 그것이 실현되니까... 얘기를 하다보니까 좋은 쪽 얘기만 나오네요(하하). 성과에 대해서 조금 얘기가 나왔는데, 각자가 보는 여성의전화 10년의 활동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이성숙 : 여성의전화가 한 계층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속에서 보통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의미를 찾아가는, 지역사회 속에서 대중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회원모집 할 때도 모든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그런 단체로 다가섰으면 좋겠어요. 집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1년 동안 활동해 보니까 광명시가 엄청 작더라구요. 요 자그만 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는 그런 단체, 어려운 사람이나 여자들한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 전영미 : 여성의전화가 필요해서 오는 곳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지나가다가 여기는  커피 한 잔, 따뜻한 물 한 모금,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희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부분이 홍보 부분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여성의전화를 소수밖에 몰라요. 홍보를 통해 대중화 시키는 게 필요해요. 지금도 홍보를 통해 상담 건수가 많이 늘었거든요. 우리를 그 만큼 안다는 얘기잖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면 “여성의전화가 뭐에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 광명여성의전화'라고 받아 주시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홍보 효과를 본 것 중의 하나가, 지난 7월 여성주간 때 시민을 대상으로 했던 모의재판이 우리를 알리는 큰 계기가 되어서, 참여하신 분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업을 자꾸 해서 우리를 알리는 홍보를 했으면 좋겠다. 실태조사 토론회 같은 경우도 대안으로 나온 것이 홍보와 교육이거든요.

- 강은숙 : 우리가 2000년도에 상담소를 개설하고 상담을 하면서 민주빌딩 있을 동안 일 년 평균 400여건 되다가 그 후 몇 년 동안 상담소 활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300여건으로 줄었어요. 줄었다고 하는 것은 홍보가 안 된 것도 있겠지만 상담을 받았던 분들이 '별로네.' 라고 해서 줄어들 수도 있고, 어쨌든 다시 새롭게 상담 건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상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상담건수 자체가 500건 이렇게 대폭 늘지는 않았어요. 서울 번호를 같이 써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어쨌든 상담 건수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죠.

- 신영옥 : 그 전에 비해서 면접상담이 많이 늘었어요.

- 전영미 : 면접, 전화 상담도 그렇고, 그 분들에게 어떻게 오시게 됐냐고 물어보면, 한빛방송, 광명소식지 등을 통해서 계속 홍보를 했었고. 리플렛도 많이 제작해서 교육을 가서 많은 분들에게 홍보하고. 광명여성의전화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 정금숙 : 상담을 하면서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인데..숫자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눠서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면 비록 그들이 우리 단체에 문을 두드리고 같이 활동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서로가 그렇게 같이 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러다 회원에 가입할 수도 있는 것이고..

- 강은숙 : 네,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 그 중에 몇 명은 회원에 가입하겠죠.(하하)

- 전영미 : 10년이라는 세월이 나무 한 그루가 숲이 되는 시간이잖아요. 회원들의 활동이 숲이 되어 상담을 받은 분들이 하나의 과실로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성의전화는 행복의 전도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여기에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행복해서 활동해야 다른 사람들한테 전해줄 수 있거든요.. 저는 처음에는 여기 소속된 느낌을 못 받았는데 이 자리에 와서 이제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어요. 숲으로 인해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듯이 회원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요. 10주년 준비를 하면서 회원 한 분 한 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 유승희 : 사실 전 광명여성의전화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10년이 돼서 결실을 보고 있으니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그러네요. 앞으로도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실현해 가는 여성의전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강은숙 : 왠지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하하). 능력 있는 사회자는 제 시간에 끝내야겠죠? 10주년 행사를 하면서 10년의 활동을 정리하는 자료집을 낼 건데요, 자회자찬이 아니라 지역에서 여성의전화가 처음으로 한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지역에서 성폭력문제로 처음으로 캠페인 했고, 성교육, 상담학교, 가정폭력 여성을 주제로 한 연극공연도 처음 했어요.

- 전영미 : 그래서 제가 여성의전화를 큰 나무에 비유했던 거죠.

- 강은숙 : 예. 여성정책 토론회도 처음 했고요. 물론 그것들이 지역 시민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많이 미친 부분이 실제로 있어요. 저희가 아직도 여성의전화가 회원 수도 적고 덜 알려진 면이 있지만 해 왔던 일들의 영향력을 볼 때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이것은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회원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일들을 하려면 지금까지는 처음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려면 여성단체로서 회원단체로서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져가면서 아까 이성숙 선생님 말처럼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활동을 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10주년 행사에 꼭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전영미: 가야할 곳은 많고 바쁘지만 여러분이 선택한 곳이 바로 여성의전화의 10주년 행사였으면 좋겠습니다.

- 강은숙 : 지금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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